나의 근간을 뒤흔든 책

 

나의 굳어진 선입견을 소신이라는 포장뒤에 숨길 수 있을까?

 

혹은 단언컨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 모두 반성하자는 필자의 말에 나는 나의 휘황찬란한 대답을 지껄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정말 중요한 것은 좋은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하라는 건, 어쩌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 수 있는 길이 되진 않을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정답도 내놓지 못하면서 허무주의에 빠져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욕보이고 그저 시국에 대한 비판과 신세한탄만 하는 그저 노답이나

 

외쳐대는 사람들을 아니꼽게 보진 않았는지, 속으로 나한테만 보이는 선명한 답을 보이며 '누구나 하는 생각'이라고 여기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판사유감 본문-

 

-생각할수록 저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매사에 꼭 선명한 결론을 내리려고 무리하는 것은 오만인 동시에 무지입니다.

 

-근거 없는 확신을 유포하는 것은 무지를 넘어선 범죄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언어와 지식의 원천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무슨 거창한 문제에 대해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친구의 말을 듣다 보니 귀에 익은 논리라서 곰곰 생각하다가 , 그거 근데 며칠 전 무슨 신문에서 본 이야기 아니니?” 하고 묻자 친구가 겸연쩍어 하며 그랬었나?”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1차적으로 체득하는 지식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 지식의 원천은 타인의 논거와 결론을 2차적, 3차적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여러 다리를 건너온 것일수록 내용이 축약되고 오도될 가능성도 많지요. 그나마도 우리의 지식은 직접 인용도 아니라 재인용, 재재인용이며 그것도 검증 없이 스쳐 지나가며 입력된 것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엄밀히 준별하지 아니한 채 확실한 지식이라고 착각하며 자기 자신의 결론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자각하게 하기 위해 평생을 가르쳤는데, 한국의 인터넷상에는 약관 20대에 한국경제의 모순 구조, 국제사회의 역학 관계, 한국근현대사의 진실, 국제 과학계의 파워 게임과 음모 등을 훤하게 꿰뚫는 현자, 예언자들이 득실거립니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일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고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 또한 지성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결론을 사실상 열어놓고 반문하는 의문이 아니라, 진실의 열린 가능성을 열어 둔 순수한 의문을 갖는 것.

 

-소신은 면죄부가 아니다.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스탈린도 평생 소신을 지킨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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