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판사유감을 읽고 바로 읽으려 했으나 읽고 있던 책들과 중간고사 그리고 수영 또 수영하느라 이제야 읽게 됐다. 사실 게을러서 늦게 책을 집어 들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금세 읽었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막연히 느끼던 것을 뚜렷한 활자로 표현해주기도 하고 평소에 주의하지 못했던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주었다. 판사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현상은 꽤나 흥미로웠다. 사실 책을 읽고 리뷰를 한다는 게 여간 귀찮아 바로 다음 책으로 넘어 가기 일쑤인데 이렇게 내가 직접 글을 쓰니 더욱 선명하게 느끼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을 하고 뒤이어 한민족끼리 총칼을 겨누기까지 했던 바람 잘 날 없던 대한민국에서 서구에서 발전시킨 법 질서를 정착시키기란 여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는 공정한 룰을 필요로 하고 그런 룰에 의해 개인의 자유는 일정부분 제약 받는다. 다양한 개인을 포용하고 더 나은 자유를 위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유는 제약 받아야한다. 인간이란 객관적인 척 논리를 펴도 결국 인간이란 자신의 선호, 자기가 살아온 방법에서 벗어나기란 힘드니깐.

 

과연 우리 사회는 이대로 괜찮은가? 민주화항쟁은 아직 30년 전이고 구시대적인 사건 이였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터진지 6개월이 지났고 그로인해 원래의 대통령 선거 날짜가 당겨져 이틀 후인 201759일 화요일에 투표가 시작된다. 내 나이 27, 두 번째 투표이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70대가 아닌 투표율이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여줬던 20대이다. 하지만 이건 우리 세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심지어 386세대도 그들이 20대일 때 투표율이 낮은건 매 한가지였다니깐 말이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20대는 어떻게 소중한 한표를 줄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이념정당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양대정당이 있고 우리는 그러한 정당들의 표지를 가리고선 공약집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한쪽의 인기공약을 공바로 다른 쪽이 따라하는 일도 흔하다. 경제성장의 주력하면 보수이고, 경제성장 이면의 빈부격차와 인권침해를 지적하면 진보로 나눌 만큼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고 눈에 딱 보일만큼 간단하지 않다. 말 한마디에 좌, 우를 왔다 갔다하는 현상은 꽤나 흥미롭다. 차라리 바둑알을 골라 세는게 낫다. 국민 대상 여론 조사를 보면 대체로 많은 복지 혜택을 원하고 세금은 더 내길 원치 않는다. 복지혜택은 원하면서 세금은 더 내길 원하지 않는다니 아이러니하다. 대한민국만 특유의 국민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원인은 내가 낸 세금이 효율적으로 쓰여서 내가 혜택을 받는다는 신뢰성의 부재가 그런 현상을 일으켰고 청렴한 공직원이 부재한 이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북유럽 국가처럼 막대한 세금을 걷고 훌륭한 복지정책을 이루기란 불가능해 보이니 선택적 전략 같아 보인다. 언제까지 선거를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남길 것인가? 20대의 투표율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20대를 위한 공약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지키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비판은 할 수 있다.

개인주의자선언을 읽으면서 꽤나 흥미로웠던 것은 미국의 동성애자 찬성율의 급적 증가가 20대의 표심을 위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20156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결정

이런 큰 변화의 배후에는 그 사회구성원들의 생각의 변화가 존재하고 따라서 미국 내 동성결론 지지율은 10년 사이에 37%에서 60% 대폭 상승했다. 어떻게 선진국 중 가장 보수적인 기독교 국가로 꼽히는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변화가 발생했을까?

여러 분석중에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2008년 공화당의 대선패배를 그 주된 이유로 보았다. 대선패배로 인해 그동안 묻혀있던 당내 이견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2010년 공화당 전국의장 출신 켄 멜번이 동성결혼지지 켐페인을 시작했고 청년층의 표를 잃지 않으려면 당이 이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 했다. 이런 당내 분위기가 공화당 지지자들의 입장을 바꿨고,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지지율이 대폭 상승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에게 칼을 쥐어 주진 않더라도 그들의 시선을 우리에게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성과가 아닐까. 꼭 본인이 해당한 연령대에 공약이 아니더라도 민주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누구나 공평하게 갖는 한표가 있다. 그 한표로 5년간 입을 옷을 현명하게 선택하는 개인이 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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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근간을 뒤흔든 책

 

나의 굳어진 선입견을 소신이라는 포장뒤에 숨길 수 있을까?

 

혹은 단언컨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 모두 반성하자는 필자의 말에 나는 나의 휘황찬란한 대답을 지껄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정말 중요한 것은 좋은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하라는 건, 어쩌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 수 있는 길이 되진 않을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정답도 내놓지 못하면서 허무주의에 빠져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욕보이고 그저 시국에 대한 비판과 신세한탄만 하는 그저 노답이나

 

외쳐대는 사람들을 아니꼽게 보진 않았는지, 속으로 나한테만 보이는 선명한 답을 보이며 '누구나 하는 생각'이라고 여기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판사유감 본문-

 

-생각할수록 저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매사에 꼭 선명한 결론을 내리려고 무리하는 것은 오만인 동시에 무지입니다.

 

-근거 없는 확신을 유포하는 것은 무지를 넘어선 범죄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언어와 지식의 원천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무슨 거창한 문제에 대해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친구의 말을 듣다 보니 귀에 익은 논리라서 곰곰 생각하다가 , 그거 근데 며칠 전 무슨 신문에서 본 이야기 아니니?” 하고 묻자 친구가 겸연쩍어 하며 그랬었나?”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1차적으로 체득하는 지식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 지식의 원천은 타인의 논거와 결론을 2차적, 3차적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여러 다리를 건너온 것일수록 내용이 축약되고 오도될 가능성도 많지요. 그나마도 우리의 지식은 직접 인용도 아니라 재인용, 재재인용이며 그것도 검증 없이 스쳐 지나가며 입력된 것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엄밀히 준별하지 아니한 채 확실한 지식이라고 착각하며 자기 자신의 결론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자각하게 하기 위해 평생을 가르쳤는데, 한국의 인터넷상에는 약관 20대에 한국경제의 모순 구조, 국제사회의 역학 관계, 한국근현대사의 진실, 국제 과학계의 파워 게임과 음모 등을 훤하게 꿰뚫는 현자, 예언자들이 득실거립니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일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고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 또한 지성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결론을 사실상 열어놓고 반문하는 의문이 아니라, 진실의 열린 가능성을 열어 둔 순수한 의문을 갖는 것.

 

-소신은 면죄부가 아니다.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스탈린도 평생 소신을 지킨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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